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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닥터’ 과대홍보에 솔깃 … 효과 입증 안 돼도 매출 쑥쑥

  • 등록일 : 201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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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5.05.23일자 기사 스크랩


‘쇼닥터’ 과대홍보에 솔깃 … 효과 입증 안 돼도 매출 쑥쑥

 

서울시 동작구의 이선희(57·여)씨는 2년 전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갑작스레 얼굴과 손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거나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등의 갱년기 증상에 시달렸다. 병원에 갔더니 여성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나아질 거라 했다. 6개월쯤 치료를 받자 증세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한데 주변 친구들은 “호르몬 치료 받으면 유방암이 생긴다”며 겁을 줬다. 몇몇은 “약보다는 천연식품이 나으니 백수오 제품을 먹어보라”고 권했다. 그렇지 않아도 홈쇼핑 방송에 나오는 광고를 보고 구매를 고민하던 차였다. 이씨는 병원 치료를 끊고 백수오 건강기능식품을 사들였다. 한 달에 3만~4만원 드는 병원 치료 비용에 비하면 네댓 배 비쌌지만 개의치 않고 꾸준히 먹었다. 처음 한 달은 효과가 있는 듯했다. 한데 3개월쯤 지났을까, 갱년기 증상이 다시 찾아왔다. 이씨는 “요즘 병원에서 호르몬 치료를 받고 있다. 괜히 돈은 돈대로 쓰고, 고생만 한 셈”이라고 말했다.

 

최근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2009년 9598억원 규모였던 건강기능식품 총 생산액은 2013년 1조4820억원으로 60% 불어났다. 수입액도 3854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경기침체로 소비가 위축됐지만 건강기능식품 시장만은 굳건했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는 “인구 고령화와 함께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욕구가 커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설명했다. 이씨처럼 건강기능식품에 대해 오해하는 이도 늘었다. 건강기능식품을 약처럼 여기며 병을 치료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홍삼(左), 백수오(右)

◆90%가 과학적 근거 부족=건강기능식품은 어디까지나 ‘식품’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특정 분야의 건강 개선에 도움을 준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건강기능식품으로 인정한다. 양창숙 식약처 건강기능식품과장은 “제조업체가 해당 원료의 기능을 증명하는 실험연구·동물시험·인체시험 등을 시행한 연구자료와 논문 등을 식약처에 제출하면 이를 분석해 기능성 인정 여부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529개가 인정받았다. 양 과장은 “식사만으로 섭취하기 어려운 영양소나 특정 성분을 추출해 캡슐이나 드링크 형태 등으로 먹기 쉽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건강기능식품이 건강 개선에 얼마나 도움을 주느냐다. 국립암센터 가정의학과 명승권 박사는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식약처의 인정 시스템이 매우 부실하고 식약처가 규정하는 기능성 등급과 기준은 비과학적”이라고 지적했다. 식약처는 기능성 원료를 4단계로 분류한다. 질병 발생 위험 감소 기능, 생리활성 기능 1등급(제품에 ‘OO에 도움을 줌’으로 표기), 생리 활성 기능 2등급(‘OO에 도움을 줄 수 있음’), 생리 활성 기능 3등급(‘OO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인체 적응시험이 미흡함’)이다. 2등급에 해당하는 백수오 추출물의 경우 기능성 인정 내용으로 ‘갱년기 여성의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이라고 표기돼 있다.

 

가장 높은 등급인 질병 발생 위험 감소 기능 인정을 받은 원료는 비타민D·칼슘(골다공증), 자일리톨(충치) 세 가지뿐이다. 두 번째인 생리 활성 기능 1등급은 글루코사민·이소플라본·루테인 등이다. 명 박사는 “2등급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자료가 하나만 있으면 주고, 3등급은 사람 대상 연구 자료가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2, 3등급의 경우는 기능성이 있다 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홍삼·유산균·일반비타민 등 90% 이상의 건강기능식품이 2, 3등급에 해당한다.

 

◆유산균이 만병통치약?=소비자들이 건강기능식품에 큰 기대를 걸게 된 데는 ‘쇼닥터(show doctor)’들이 큰 역할을 했다. 쇼닥터란 방송에 등장해 의학적 근거가 뚜렷하지 않은 치료법을 제시하는 일부 의사를 말한다. 이들이 TV프로그램이나 홈쇼핑에 출연해 건강기능식품을 의약품처럼 홍보하면서 대중 사이에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맹신이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산부인과 전문의 A씨는 지난해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유산균을 먹으면 혈당이 조절되고, 고혈압·류머티즘 약을 안 먹어도 된다. 불임 환자가 한 달만에 임신이 됐다”고 말했다. A씨는 홈쇼핑에 출연해 유산균 등 건강기능식품을 팔았다. 홈쇼핑 채널에 단골 출연하는 피부과 전문의 B씨는 자신이 개발한 유산균을 만병통치약처럼 광고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C씨는 홈쇼핑에 출연해 백수오 제품이 중년 여성뿐 아니라 젊은 여성의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고 선전했다. 전문가로서 사회적인 신망을 받는 의사들의 이런 말은 대중의 뇌리를 파고들 수밖에 없다.

 

이들의 달콤한 말에 현혹돼 약을 끊고 건강기능식품에만 매달리기도 한다. 6살, 4살 딸을 둔 주부 김모(39·경남 거창군)씨는 “애들이 아토피성 피부염이 있어 피부과에서 처방해 준 스테로이드제를 쓰고 있는데 부작용이 걱정됐다. 그러던 차에 홈쇼핑을 통해 의사가 개발했다는 유산균을 사서 먹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산균만 먹어서 치료가 될 리 없었다. 김씨는 “약을 끊고 유산균만 먹였는데 며칠 만에 큰딸이 피가 나도록 팔목을 긁는 모습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잘못된 생각으로 애 잡을 뻔했다”고 후회했다.

 

서울성모병원 갱년기클리닉의 김미란 교수는 “찾아오는 환자 대부분이 오기 전에 백수오를 사먹고 온다. 내가 봐도 안 사면 안 되겠다 싶을 만큼 방송에서 워낙 과대광고를 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호르몬 치료 부작용에 겁을 먹어서인데 사실 그런 확률은 낮다. 백수오 등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데 반해 호르몬 치료는 의학적으로 오래 연구하고 검증이 된 것인데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신현영 대변인은 “쇼닥터들이 건강기능식품 시장을 키웠다고 본다. 일부 의사의 이런 행위는 공신력을 상품화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의사로서 도의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말했다. 정부와 의협도 대책을 마련 중이다. 보건복지부는 의료인이 홈쇼핑 방송이나 신문에서 건강기능식품이나 의약품을 광고하고 효과를 보증하는 행위를 막기로 했다. 특정 식품이 질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식의 허위·과장 의료 정보를 제공할 경우 자격정지 3개월의 처분을 받게 된다. 의협은 지난 20일 ‘의협 쇼닥터 심의위원회’를 구성했다. 의료계·미디어학계 등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쇼닥터를 심의하고 관련 가이드라인도 내놓을 계획이다. 식약처 안만호 대변인은 “다음주 중으로 건강기능식품의 안전성과 품질 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며 “이미 기능성을 인정받은 원료에 대해서도 재평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